11. 태오의 말을 전달받은 유결은 그날로 신우재를 호출했다. 그는 기대 이상의 보고라며 박수를 짝짝 쳐댔다. 보고서에 대한 A4용지 5장짜리 독후감이라도 써서 당장 메일로 답장 줄 기세다. “하지만 곤란하네.” 오버해서 감격할 땐 언제고. 애초에 피 안 줄 거면 여기까지 부르질 말던가. 그러나 일부러 애연한 표정을 티 나게 그려내며 나불대는 걸 보면 정...
“설이는 그걸 자학이라고 불렀어.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. 넌 틀렸다고. 그래도… 나는 내가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이 말처럼 여전한 부분도 있었나 봐.” “…….” “나도 그래.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, 마음조차 먹을 수 없는 일이 태반이야. 나는 햇빛 아래에서 돌아다닐 수 없어. 집 밖으로 나온 지 오래되어서 세상을 몰라. 그러...
“왜 노려보고만 있어요. 뭐가 먹고 싶은데요?” “저건 무슨 맛이야?” 초코케이크였다. “초코케이크 맛이… 그러니까 초코는 달아요. 촉촉한 것도 있고, 찐득한 것도 있고… 저건 찐득할 것 같은데.” “까마니까 탄 맛이 날 것 같았는데 단 맛이구나. 사탕 같은 맛인가.” 사탕도 달지만 완전 다른 맛인데. 게다가 케이크는 다 단 맛이고…. 어렵다 어려워. “초...
“저 남자가 선풍기 같은 걸 손에 들고 다녀.” “선풍기 맞아요. 더위 엄청 타나 보네.” 그건 시작이었다. 저렇게 높은 구두는 발목이 불안할 텐데. 아무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. 뭘 기다리는 거지? 앞에 봐. 불 꺼진 곳이 없네. 방금 봤어? 시간이 늦었는데도 식당에 사람이 가득 찼어. 앞에 봐. “네, 네. 앞에 봅니다.” 어이가 없어서 헛...
무슨 물물교환도 아니고. 게다가 방금 질문자도 그였다. “또 뭘 말입니까.” “알약. 로브. 태오에게 물어봐도 될 걸 굳이 나에게 물어보는 신 형사에게 뻔하지만 질문 한 가지를 하겠네. 명령은 아니고 권유였다지만, 태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있나?” “영화를 보라고 했지, 뭘 가르쳐주기까지 해야 합니까?” “저런. 실수를 저지르고도 이리 당당한 조직원이...
“너 밤새운다고 말은 했지?” 신우재의 반응을 본 이정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. “지금 몇 시예요? 저 핸드폰 위에 있어요. 저 먼저 갈게요.” “신우재.” 허둥지둥 자리를 뜨려는데 이정운이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. “네.” “신우재 형사. 내가 널 조사실에 바로 안 데리고 들어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.” “…죄송합니다.” “죄송합니다가 아니라, ...
서초서 형사 세 명은 배를 타고 대기 중이며, 두 명은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주하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흘러나왔다. 이정운은 한 명은 SUV 쪽으로, 다른 한명은 밀항 선박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. “온다.” 저 멀리서 엔진을 끈 배 한 척이 지척으로 다가왔다. “나는 박대천 잡는다. 준범이는 나 따라붙고, 우재는 배 쪽으로 가. 주하는 도망치는...
차에 짐을 실은 태오가 이번엔 안전벨트를 스스로 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. 차가 출발하자 신난 듯 콧노래도 흥얼거렸다. 이제는 안 무서운가 보다. “너도 장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.” “네? 딱히요.” “그래? 내내 웃고 있어서 장보기를 즐기는 줄 알았어.” 장보는 게 아니라, 그의 낭비벽이 어이가 없어서 웃긴 거였는데. 그러고 보니 가라앉...
“여기가 길이 거칠어서 그래요. 사고 안 나니까 걱정 말고 벨트 좀 놔요.” “저기, 나는 벨트가 더 불안… 윽.” 갑자기 어둠 속에서 동물 친구가 튀어나왔다. 습관처럼 급정거하며 조수석 앞을 막았다. 깜짝 놀란 태오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. “…죄송해요.” “…으응. 저게 안 보였나 봐.” 사람이라면 다 안 보이거든요. 안전벨트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태오...
“나처럼 어리고 귀여운 애가 좋다고 하면 그냥 만나면 되지. 세상 범인 혼자 다 잡으시나.” “하하하….” “난 방금 형 좋다고 대놓고 말도 했는데. 은근슬쩍 넘어가고!” “그게-.” “오늘은 저랑 영화라도 봐요!” 왜 다들 저를 붙잡고 영화 타령일까. 오늘은 데이트하려고 불려 나온 게 아니었다. 이 겸연쩍은 태도에 눈치를 챈 건지 아닌지, 유승현은 오늘따...
“밤에 별 사진을 여기서 찍었어.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실력이 금방 일취월장해서… 아, 그러니까… 실력이 나아져서-.” “일취월장 정도는 알거든요.” 어이없어서 말을 자르자 태오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. 문득 이 순간이 기이하게 느껴졌다. 특이한 장소와 특이한 종족. 그런데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고 편안했다. 사위에 나무밖에 없는 별장 같은 집. 사람이 올라올 ...
문 너머로 빳빳한 질감의 까만 커튼이 나타났다. 집처럼 중문을 만든 것 같았다. 발소리 때문인지 너구리가 숨으려고 바삐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. 돌아오지 못하는 강, 아니 문을 여는 것 같아서 잠시 고민됐지만 결국 커튼을 양쪽으로 젖혔다. “어?” 장지문은 정말 취향일 뿐이었는지 안은 예상외로 평범했다. 한옥이나 창고보다는… 작업실? 커다란 유리창에서 내려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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